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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양역지(以羊易之)와 쇠(소)고기

조혜형 | 기사입력 2024/07/23 [08:34]

[기고] 이양역지(以羊易之)와 쇠(소)고기

조혜형 | 입력 : 2024/07/23 [08:34]

▲ 이준용 연천문화원장

 

맹자가 아주 인자한 왕으로 알려진 제나라 선왕(宣王)을 찾아갔다. 어떤 소문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 소문이란 이런 것이었다.

 

선왕이 행차 길에 소를 끌고 가는 신하를 보고 물었다. “그 소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 “흔종(釁鍾)하러 갑니다.” 흔종의 ‘흔’은 "피 바를 흔"이다.

 

흔종은 종을 새로 주조하면 소를 죽여 목에서 나오는 피를 종에 바르는 의식이다. 소는 제물로 끌려가고 있었다. 그 소가 벌벌 떨며 눈물을 흘렸다. 그것을 본 선왕이 신하에게 말했다. “그 소를 놓아주어라.” “그럼 흔종을 하지 말까요?” “흔종을 어찌 없앨 수 있겠느냐, 소대신 양(羊)으로 해라.”

 

그래서 맹자가 왜 그렇게 했는지 물었다. 이에 선왕은 ‘벌벌 떨면서 죄 없이 사지로 끌려가는 소가 불쌍해서 그랬다’고 한다. 맹자가 되물었다. “그럼 양은 불쌍하지 않습니까?” 선왕이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맹자가 “왕께서 소를 양으로 바꾼 이유는, 양은 보지 못했고 소는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맹자가 내린 해석이다. 이것을 두고 이양역지(以羊易之) 고사라고 한다.

 

‘본 것’과 ‘못 본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본다는 것은 만남이다. 옛 선비들이 푸줏간을 멀리한 까닭은 그곳의 가축이 죽으며 내는 비명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를 들으면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축(家畜)에서 신분이 상승한 개(犬), [개(犬) 식용(食用) 금지법(禁止法)]

그간 우리나라에서 오랜 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식용을 위한 개 사육과 도살이 2027년부터 법적으로 금지된다. 지난 30년이 넘도록 이어져 온 해묵은 ‘개 식용 논쟁’이 막을 내린 것이다.

 

오랜 시간 한국인의 대표 보양식으로 꼽혀온, 그래서 ‘사철탕’이라고 명칭마저 은폐해왔던 일명 '보신탕(개장국)'도 사라질 전망이다. 식용 목적으로 개를 도살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사육·증식·유통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그렇다면 개 식용금지법의 이야기도 ‘이양역지(以羊易之)’의 관계성에서 해석해 보자. 개는 보았고, 소, 돼지, 닭은 못 본 것이다. 그래서 개는 먹으면 안 되고 소. 돼지. 닭은 먹어도 된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우리나라 개고기 논쟁은 88서울올림픽 이후 30여년 넘게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논쟁이 반복되는 동안 개는 어느새 반려동물 지위를 얻어 천 만명 넘는 이들의 가족이 됐다. 물론 개고기 먹는 사람 숫자도 현저하게 줄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개도 가족이니 더 이상 사람의 먹잇감으로 보지 마십시오. 개도 사람과 같습니다. 법으로 먹지 못하도록 해주십시오. 그 외 가축은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결국 선왕(宣王)의 소와 같은 것이다.

 

소고기와 쇠고기

수십년전 한 라면회사에서 소고기를 주원료로 한 스프를 시중에 내놓으며 ‘삼양 쇠(소)고기면’이라는 상품을 출시한 적이 있다. 굳이 소고기라면 될 것을 쇠라고 써놓고 괄호를 열어 소를 써 넣었을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돼지를 잡아서 식용을 하면 돼지고기이다.

 

닭을 잡아서 먹는 고기는 닭고기. 개는 개고기, 양은 양고기. 이렇게 명칭이 분명한데 왜 소는 소고기가 아니고 ‘쇠’고기일까? 그리고 그 당시에는 소고기가 아니고 쇠고기가 국어에서 통용되는 표준어였다.

 

2008년 개봉하여 대히트를 한 ‘워낭소리’라는 영화가 있었다. ‘워낭’이라는 것은 소의 목에 달린 방울을 뜻하는 말이다. 영화는 40여년을 산 누렁이라는 소와 팔순노인 부부의 이야기이며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식 영화이다.

 

원래 소는 수명이 15년에서 길게 살아야 20년이지만 이 소는 노인 부부의 극진한 보살핌에서 그 곱절을 산 것이다. 물론 그동안 소는 그냥 놀고먹으며 살지는 않았다. 농삿일을 도와주고 수레를 끌며 가족같이 산 것이다. 그리고 소가 죽자 땅에 묻어주었으며 이후 2013년 노인이 죽자 노인의 유언에 따라 그 옆 인근에 나란히 묻혔다.

 

이렇듯 소는 예전에 우리와는 그저 농사일을 돕는 농기구(?)차원이 아니라 가족(반려우 伴侶牛?) 그 이상의 대우를 받으며 산 가축이다. 그러나 그 명이 다하면 묻어주었을까? 미안하지만 배고픈 백성들에게 그럴 리가 없다. 소는 그 쓰임을 다한 후에 다시 사람들의 먹이가 되어 주었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도 양심이라는 것은 있어서 차마 자기가 부리던 소를 잡아먹었다는 양심의 가책에 소를 먹었다고 하기가 마음에 걸려서 소고기가 아니고 ‘쇠’고기를 먹었다고 자신에게 스스로 위안을 삼았던 것이다. 결국 소가 아니고 쇠가 되었을 뿐이다.

 

지금 사회가 농기구의 발달로 이제는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짓는 일은 거의 사라져 가고 소는 그저 우유를 짜는 젖소와, 식용으로 키워지는 육우(肉牛)만 있다 보니 이제는 ‘쇠’고기가 없어지고 소고기만 남았을 뿐이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식용문화의 큰 자리를 차지하던 사철탕(보신탕)이 법으로 금지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양역지(以羊易之)를 통해 우리 시대의 인간관계와 사회성의 실상을 재조명 해본다.

 

연천문화원장 이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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