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학교로 돌아가자. (Back to school. Financial Times 28 Oct. 2023)”는 주제의 글에서 “미국의 보수층은 최근 10여 년간 보여 온 것보다 더욱 수준 높은 교육의 영향력을 갖고 있다.(American conservatives are having more influence on higher education than they have in decades.)”고 설명했다.
교육계와 학부모, 선생님들이 모두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는 듯한 “한국의 교육”은 어떠한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인천국제공항 안내문에 쓴 "영문의 오류(중앙일보 2023. 11. 4.)", 신문에 쓴 어느 교수의 칼럼에 나타난 "한자표기 오류(일요신문 2023. 10. 27)", 그리고 서울시 포스터 문장의 "특별시 서울" 이라는 표현 등을 보면서, "神(God)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는 문장이 떠오르는 동시에, 그건 분명히, 용서할 수 없는, 공직자들의 "무책임한 게으름의 죄악(罪惡) "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교육(education)”은 단순히 “가르치는 것(teaching)”만이 아니다. 교육은 라틴어 “educo”, 즉 “이끌어 내다(영어: educe)”는 뜻으로부터 왔다. 정신과 마음 속에 감추어져 있는 욕망과 열정을 밖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다.
알고 싶고 느끼고 싶은 걸 알게 하고 느끼게 하는 거다. 공부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어떻게 가르치고 설명하는가에 따라 공부에 대한 관심과 성과가 달라진다. 공부는 지식을 머리 속에 넣어 주고, 정보를 가르쳐 주는 게 아니다. 깨닫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대 로마 그리스에서는 철학과 문학을 기본으로 했으며, 신라와 조선시대에도 글과 문장을 가르쳤다. 천자문(千字文)을 읽고 사자소학(四字小學)을 배우면서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도리를 생각하게 했다.
강의를 하러 가면, 교육담당자들로부터 “쉽고 재미 있게, 간단히 강의 해 주세요.”라는 요청을 받는다. 즐겁게 놀자는 얘기인지 묻고 싶지만 참는다. 공영방송에서 진행하는 주요 프로그램들 주제가 대부분 “먹자, 놀자, 웃자”이다. 진지하게 토론해야 하는 프로그램에서도 웃고 까부는 수다쟁이들이 인기가 있다.
이제 세계는 막을 수 없는 “글로벌 경쟁력”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인공지능의 한계”를 경계하고 있다. 다시 교육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 깊이 있고 수준 높은 학문의 연구와 멈추지 않는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가르치고,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음미하게 하며, 베토벤과 피카소의 생을 연구하게 해야 한다. 도덕과 윤리를 제대로 가르치고, 어려운 수학문제를 밤새워 풀어내는 기쁨에 취하도록 해야 한다. 논리학과 통계학을 연결시켜 생각하는 힘을 길러 주어야 한다.
잠자는 학생은 깨워야 하며, 떠드는 학생은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게으른 공직자는 벌을 주어야 하며, 비리와 부정부패의 사고를 친 범법자는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예의 없고, 교양 없는 학부모는 학교에서 쫓아내야 한다. 그건 학벌의 문제가 아니라 품격의 문제이다. “교육, 무엇이 옳은가?”를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저작권자 ⓒ yc-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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